"헬로우~"를 외치는 베트남 소수민족 '천국'의 아이들
[하장 오지마을 'E-bike' 여행기 ②] 마을과 마을을 잇는 '소통의 길'을 달리다.
[caption id="attachment_10341" align="aligncenter" width="1000"] 베트남 최북단 하장성 소수민족 여인이 아이를 안고 있다. ⓒ 캠프비엣[/caption]
자전거 여행 둘째 날(2월 27일) 오후 코스의 주제도 베트남 소수민족 몽족이 살고 있는 마을 탐방이었다.
연무에 휩싸여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산봉우리와 층층이 형성된 다랑이 논밭을 바라보며 달리는 아늑한 산길. 급격하게 깎아지른 산비탈에 아슬아슬 달라붙어서 땅을 일구는 사람들. 공용 빨래터에 모여 빨래하는 사람들. 소박하기 그지없는 아담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은 한 폭의 수채화였다.
마을 한복판에 있는 800년 이상 된 나무와 서낭당도 둘러보고,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인생샷도 찍고, 노점에서 현지인들과 같이 군것질도 하면서 짧은 휴식도 취하고, 업힐 후 짜릿한 다운힐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인 동반이 모습을 드러낸다.
동반까지 들어가는 길은 스피드를 좀 내면서 스릴을 맛보는 구간이다. 꾸불꾸불 내리막을 달리다 보면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쏟아져나와 연신 '헬로우'를 외친다.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굴렁쇠 같은 것을 굴리거나 땅을 파며 노는 아이들도 흙 묻은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해맑게 인사한다. 곳곳에 매화, 복숭아꽃, 유채꽃이 한창 피기 시작했다. 동남아에서 보기 힘든 울창한 소나무 숲을 뒤로 하고 오지 마을을 빠져나와 동반 시내로 접어들었다.
[caption id="attachment_10343" align="aligncenter" width="1003"] <베트남 하장 오지마을 ‘E-bike’ 여행> 참가자들이 전기자전거를 타고 소수민족 마을길을 달리고 있다. ⓒ 캠프비엣[/caption]
길이 넓어지면 속도가 빨라진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도 조금씩 빨라지고 각박해진다. 반면, 길이 좁아지면 속도가 느려지고, 사람 마음도 반비례해서 더 넉넉해지고 더 행복해진다. 황상현 코치는 "오지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좁은 길로 단절돼 있어 보는 게 많지 않아서인지, 또는 그리움 때문인지, 누군가 찾아오면 굉장히 반겨주는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며 "자전거를 타고 라이딩을 한다기보다는 이렇게 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여행인 것 같다"고 말했다.
돌 틈 사이 한 평 남짓 땅이라도 개간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동반 지역은 지질학적 다양성 덕분에 카르스트 지형이 크게 발달했다. 이 일대에 다양한 형태의 '암석 정원', '암석 숲' 등이 형성된 것도 이 때문이다. 여러 산맥이 서로 꼬리를 물고 이어져 하늘로 솟아있는 피라미드 형태의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약 5억 4500만 년 전 형성된 석회암 지대로, 옌민, 메오박 등과 함께 2010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동반 카르스트 대지 위에서 몽족, 자오족, 로로족, 따이족, 눙족 등 소수민족이 풍성한 전통문화를 뿌리내렸다. 그들은 돌 틈 사이사이 한 평 남짓 땅이라도 있으면 개간해 옥수수와 사탕수수 등을 심어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렇게 신비로운 '암석 정원'이 만들어졌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억척스럽게 살아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그들의 숙명 같은 삶에 무한한 경외감마저 들었다.
[caption id="attachment_10344" align="aligncenter" width="1001"] 베트남 최북단 하장성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민족인 몽족 주민들이 모여서 밭을 개간하고 있다. ⓒ 무한질주-MTB 제공[/caption]
자전거 여행 셋째 날(28일). 동반에서 다시 옌민으로 돌아가는 55km 구간은 오지마을 구석구석으로 실핏줄같이 뻗어있는 임도를 타고 좀 더 내부 깊숙이 들어가 보는 코스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 한 대 지나가기도 버거울 정도로 좁고, 가파르고, 진흙투성이 비포장길이다. 임도 옆으로는 수십 미터 깎아내린 절벽이 버티고 있어 아찔하다. 결국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야 했다.
'무한질주-MTB' 밴드장을 맡고 있는 조용진(60)씨는 "카르스트 지형이다 보니, 고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밑에서 바라본 풍경과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완전히 다르다.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어서 너무 좋았다"면서 "저한테는 좀 (라이딩 난이도가) 평이했지만, 다른 분들에게는 까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라이딩 난이도가) 어느 정도 보편적이어서 많은 분께 좋은 코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지마을을 가기 위해 타는 임도는 사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소통의 길'이고 '생존의 길'이다. 일행은 자전거를 탔지만, 사람들은 마을에서 마을로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험한 길을 걷고 가파른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그들의 고된 삶과 이 굴곡진 길이 고스란히 닮아있다. 척박한 소수민족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하장 지역이 베트남 북부의 다른 지역에 비해 문명으로부터 비교적 오랫동안 차단된 것도 이 험난한 길 때문이다.
[caption id="attachment_10345" align="aligncenter" width="971"] 베트남 최북단 하장성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민족인 몽족 주민들이 빨래터에 모여 빨래를 하고 있다. ⓒ 최경준[/caption]
황상현 코치는 "제가 이 오지마을 길과 코스를 개발한 게 아니다. 이 길은 원래 있던 길이고, 특정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황 코치는 "중국 한족한테 밀리고, 베트남족한테 밀린 몽족들이 이 산속으로 들어갈 때 어떤 심정이었겠느냐"면서 "이 길은 그 사람들이 낸 길이다. 처음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그 길에 들어가면서 어떤 고통을 안고서 들어갔을까, 또 어떤 삶의 희망을 꿈꿨을까, 그런 그들의 애환을 여행하면서 조금이라도 들여다봤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옆에 있던 백향하씨도 "길과 길을 잇는 게 여행의 묘미일 텐데, 이번에는 오지의 소수민족 사람들을 잇는 길을 다녀간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말을 보탰다.
점심을 먹고 몽족 왕궁을 둘러본 뒤 다시 오지마을 길로 업다운을 반복하다가 옌민까지 20km 다운을 시작하는 지점에 섰다. 황 코치가 "사고는 오르막길이 아니라 내리막길에서 발생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어쨌든 시속 50km 이상의 속도를 내며 달릴 수 있는 내리막길은 신이 났다. 헤어핀 구간을 지나며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지만, 오히려 쫄깃함이 컸다. '이런 재미로 자전거 타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caption id="attachment_10388" align="aligncenter" width="955"] 베트남 최북단 하장성의 깎아내린 산비탈에 있는 소수민족 마을 - 무한질주-MTB제공[/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0386" align="aligncenter" width="966"] 베트남 최북단 하장성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민족인 몽족의 한 여인이 짐을 지고 가고 있다 - 무한질주-MTB제공[/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0387" align="aligncenter" width="925"] 베트남 취북단 하장성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민족인 몽족 주민들이 마을길을 청소하고 있다. - 무한질주-MTB제공[/caption]
"96세 몽족 할머니의 100만 불짜리 미소"
자전거 여행 넷째 날 (1일) 옌민에서 땀선 (Tam Son)으로 가는 총 57km구간은 상급자, 중급자, 초급자가 갈 수 있는 세 가지 코스가 있다. 우리 일행은 전날 오지마을 비포장 임도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아 초금자 코스로 향했다. 그러나 가파른 업힐과 구불구불한 도로로 이루어져 있는 깐티 고개 (Can Ty pass)도 쉽지 않은 코스였다. 대신 고원 지대의 맑은 공기와 웅장한 산악 지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다랑논, 소수민족 마을 등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의 리더 역할을 한 박정규 ( 60)씨는 "임도를 가는데 군데군데 쌓여 있는 소똥 사이를 피해 가면서 어렸을 때 시골길 논밭길에서 소똥을 피해 가던 일이 생각났다. 그런 느낌이 정말 좋았다"면서" 마을에 들어갈 때도 산 위에서도, 꼬마 아이들을 많이 만났는데, 닭을 품에 안고 있거나, 나무로 땅을 파거나,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취하는 모습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점심을 먹은 "짱김"이라는 마을의 소수민족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개관된 집에서 살고 있다. 주변으로는 넓은 논과 밭 등 풍요로운 들판이 펼쳐져 있다. 메오박, 동반 쪽에서 험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달리 이들은 그래도 풍요롭게 여유로운 생활환경에서 살아가는 듯했다. 강변 옆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신 뒤 다시 깐티 고개로 올라와 자오족 마을에 도착했다. 자오족이 운영하는, 황토로 만든 홈스테이에서 숙박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고, 저녁에 자오족 주민들이 직접 선보인 '성인식' 전통 공연도 흥미로웠다.
[caption id="attachment_10390" align="aligncenter" width="519"] 베트남 취북단 하장성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민족인 한 몽족할머니 (96세)가 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 최경준[/caption]
자전거 여행 마지막 날 (2일)은 자오족 마을 주변을 라이딩하다가 하장으로 내려오는 38km 코스였다. 출발하자마자 약 2~3km 오르막길이어서 다소 힘들었지만, 이후 내리막길과 평지를 달리며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 라이딩을 즐겼다. 그렇게 237km 대장정의 막이 내리고 일행은 버스에 몸을 싣고 하노이로 향했다.
서울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김남식(70)씨는 'MTB 마니아라면 죽기 전에 꼭 한번 와봐야 하는 곳이 하장인 것 같다' 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MTB 성지라고 홍보를 많이 하고, 다른 동호회 회원들과 내년에 다시 한번 오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또 '마피랭 협곡에서는 마치 무릉도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 같았다. 지리산 도사들이 다 이리로 이사와야 할 것같다'면서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소수민족들이지만, 아무 걱정 없이 사심 없이 주어진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들이야말로 천국에 사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남 목포에서 온 정영희 (64)씨는 '자전거만 죽다 살다 탔으면 좀 싫었을 것 같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역사라든가 문화를 좀 봐야 하지 않느냐'면서 '우리는 (자전거만 탄 게 아니라) 소수민족들이 사는 모습들도 보고, 공예품을 만드는 96세 (몽족) 할머니를 보면서 마음이 자꾸 아팠는데, 그분의 100만 불짜리 미소를 보면서 그분의 삶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소개했다.
[caption id="attachment_10392" align="aligncenter" width="844"] <베트남 하장 오지마을'E-bike' 여행> 참가자들. 캠프비엣[/caption]
"자전거는 이동 수단일 뿐... 소수민족의 전통문화와 삶 더 많이 느꼈으면"
황상현 코치는 <하장 오지마을 'E-bike' 여행>을 기획하기 위해 150차례 이상 자전거를 타고 하장 지역을 누볐다. 셀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했다. 그저 이 길로 가면 다음엔 어떤 마을이 나올까 싶어 계속 자전거를 탔다고 한다. 황 코치는 '돈 벌려고? 아니다. 이건 좋아하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라며 '하노이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길을 몰라서 못하는 것보다도 자전거를 타고 길을 찾아다니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전거 타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평탄한 도로를 좋아한다. 또 어떤 사람은 숲속을 달리는 임도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자전거 한 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좁고 구불구불한 싱글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장에서만큼은 도로냐, 임도냐, 싱글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황코치는 "어떤 길을 좋아해서 가는 게 아니라 저 길을 가면은 무엇이 있을까, 누구를 만날까, 이런 것 때문에 가는 거다. 그렇게 다니다 보면 거기에 길이 만들어져 있다"면서 "이 고개를 넘으면 누가 살까, 거기 가서는 또 어떤 사람을 만날까, 그 사람들은 무얼 하며 살까, 이런 게 궁금해지니까 가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caption id="attachment_10396" align="aligncenter" width="830"] 황상현 캠프비엣 투어코치가 <하장 오지마을 ‘E-bike’ 여행>에 참가한 일행들에게 코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최경준[/caption]
황상현 코치는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길을 찾아가니면서 쉬운 길, 어려운 길을 코스별로 정리했고, 하장을 찾는 라이더 여행객들에게 그 길을 소개했다. 그게 벌써 11년째다. 한국에서만, 2,000여 명이 다녀갔다. 이전까지만 해도 일반 MTB로만 다녔기 때문에 전문 라이더가 주요 여행객이었다.
황코치는 전문 라이더가 아닌 남녀노소 누구나 오지마을과 웅장한 풍경을 체험할 수 있도록 지난해부터 전기자전거로 여행객을 맞고 있다. 닫혀 있는 오지마을의 속살을 보기 위해서는 더 좁고, 더 가파르고, 더 구불구불한 길을 가야한다. 난이도가 높을수록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특별하고 순수한 것들을 만날 수 있는 셈이다. 전기 자전거를 이용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황상현 코치는 "난이도에 따라 다양한 코스가 있지만, 길 위에 나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전기자전거를 준비하게 됐다"면서 "자전거는 이동 수단일 뿐 자전거를 탄다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문명과 차단돼 있어 쉽게 접할 수 없는 소수민족의 전통문화와 삶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 코치는 "하장은 스포츠인들이 느끼는 성취감과 희열을 모두 만끽할 수 있는 코스"라며 "비가 많이 와도 재미있고, 날씨가 화창해도 재밌고, 날이 흐리고 구름이 꽉 낀 모습을 봐도 재밌다. 다른 지역에서 느낄 수 없는 그런 감흥들을 하장에서는 느낄 수가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 오마이뉴스 - 최경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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