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장 오지마을 ‘E-bike’ 여행기 (1)] 척박한 땅에 사는 순수한 영혼, 천상 행 절대비경
[편집자말]
베트남 최북단 하장(Ha Giang) 지역은 접근하기 어려운 오지여서 자연환경이 순수하게 보존된 청정지역이다. 그랜드캐년에 비유되는 깊은 협곡과 장엄한 돌산, 예술 작품을 연상시키는 다랑이 논밭, 헤어핀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 등이 인상적이다. 전기자전거를 타고 중간중간 들리는 소수민족 마을에서 현지인들의 전통문화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신비롭고 아름다운 절경 속을 달리는 짜릿함이 환상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2일까지 4박 5일간 진행된 <하장 오지마을 ‘E-bike’ 여행기>를 두 편에 걸쳐 나눠 싣는다.

하장의 길 위에서.
페달을 밟을 때마다 안개 낀 산맥이 열리고 붉은 해가 계곡을 물들이네.
자오족, 몽족, 따이족의 마을엔 바람결에 실린 웃음소리.
비록 척박한 땅일지라도 그들의 미소는 꽃처럼 피어나네.
거친 길 숨 가쁜 오르막도 자연의 위해함 앞에서 그저 작은 떨림일 뿐,
고통은 사라지고 기쁨이 내 심장을 두드리네.
하장, 너의 품에서 나는 바퀴의 길을 따라 자유를 노래하리라”
지난 3일 오후 MTB(Mountain Bike) 라이더이자 사진작가인 홍의룡(74)씨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쓴 짧은 글을 낭독했다. 동료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베트남 최북단 하장(Ha Giang)성 일대에서 4박 5일간의 전기자전거(E-MTB) 여행을 마치고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홍씨를 포함해 19명의 일행은 전기자전거를 타고 하장 지역의 카르스트 지형과 깎아지른 절벽, 계곡을 따라 총 237km를 달리며 숨 막힐 듯한 풍경과 소수민족의 생생한 삶을 체험했다. 홍씨의 “심장을 두드린” 그 벅찬 감흥을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모두 만끽하고 있었다.
하노이에서 320km 떨어진 하장은 베트남 북부에서도 중국 쪽에 가까운 오지여서 접근하기 가장 어렵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풍경과 청정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특히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순박한 소수민족들이 세상과 단절한 채 그들만의 전통문화와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좁고,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길로는 차량이나 오토바이 진입이 불가능하다. 여유롭게 주위 환경을 즐기며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자전거 여행 성지로 불린다.

일반자전거 타는 힘의 50%만 사용해도 되는 전기자전거
자전거 여행 첫날인 지난달 26일 오전 8시 하장성 동북지역 마을인 옌민(Yen Minh)의 한 호텔 지하 주차장, 우비를 차려입은 19명의 일행이 각자의 전기자전거 옆에 섰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MTB 동호회 ‘무한질주-MTB’ 회원들이 주를 이뤘다. 대전, 전남 나주, 목포 등에서 온 4명의 친구도 함께했다.
이번 <하장 오지마을 ‘E-bike’ 여행>을 기획한 황상현(60) 캠프비엣 투어코치가 일행을 상대로 전기자전거 사용법을 설명했다. (캠프비엣은 베트남을 중심으로 자전거 캠프, 등산 캠프, 문화 체험 캠프 등 다양한 어드벤처 여행과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전문 여행 서비스다.)
일행이 타는 전기자전거는 페달과 전동기의 동시 동력으로 움직이는 페달보조 방식(PAS, Pedal Assist System)이다. 페달을 밟으면 전동기가 그 힘을 감지하고, 그 힘에 비례해 바퀴에 동력을 더해준다. 따라서 일반자전거를 탈 때보다 페달을 약하게 밟아도 자전거를 빠르게 탈 수 있다. 황상현 코치는 “(변속기) 운영만 제대로 잘하면 일반자전거 타는 힘의 50%만 사용해도 되기 때문에 전문 라이더가 아닌 일반인들도 쉽게 산악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전 사항 숙지가 끝난 뒤, 일행들은 하나둘 전기자전거를 끌고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안전! 하장!”이라는 구호와 함께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도로 위로 줄지어 첫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목적지인 메오박(Meo Vac)까지 42km(약 7시간) 코스였다. 업다운이 반복되는 포장도로를 지나자, 돌산 사이로 만들어진 꾸불꾸불한 예쁜 길이 나타났다.
여행 도중 큰 도로를 만나면 생수와 바나나, 망고 등 과일이 실린 보급트럭이 일행을 반겼다. 이 외에도 16인승 버스 1대와 오토바이 2대가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줄곧 일행을 따라다녔다. 점심을 먹는 동안 식당에서 전기자전거를 충전했다. 오후가 되면서 비가 그쳤다.
메오박으로 들어가기 전에 일행을 두 팀으로 나눴다. A팀은 난이도가 높은 코스로, B팀은 난이도가 낮은 코스로 이동했다. A팀은 좁고 가파른 시골길을 달리는 대신 소수민족 마을을 지나며 몽족, 따이족 등의 생활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또한 베트남의 그랜드캐년으로 불리는 ‘마피렝(Ma Pi Leng) 대협곡’의 초입이 자아내는 웅장한 광경을 서남쪽에서 바라보며 메오박으로 내려왔다. B팀도 소수민족들의 땀이 서린 산비탈 농경지와 오지마을 풍경을 멀찌감치 감상하며 메오박에 도착했다.

‘행복의 길’ 마피랭 대협곡과 ‘그리운 고향 강’ 송노꿰의 웅장한 경관
다음 날(27일) 오전 메오박 호텔은 조식이 제공되지 않아 지역 특산 닭고기 쌀국수로 아침 식사를 했다. 안전한 라이딩을 위해 타이어, 브레이크, 변속기 등 자전거 점검을 끝낸 뒤 동반(Dong Van)을 향해 출발했다. 메오박에서 동반까지 45km 구간은 깎아지른 절벽 옆 임도, 웅장한 마피렝 협곡, 중국 국경을 바라보는 비포장 임도 등 가히 하장 라이딩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엄청난 광경이 펼쳐지는 코스였다.
특히 약 20km 길이의 마피렝 협곡 구간은 하장 지역의 유명한 산악 도로로, 메오박과 동반을 연결하며, “행복의 길”이라고도 불린다. 마피렝 고개에서 내려다보면 험준한 절벽과 협곡 아래를 흐르는 짙은 에메랄드빛 송노꿰(Sông Nho Quế)
가 만들어내는 웅장한 자연 경관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송(Sông)은 강, 노(Nho)는 그리움, 꿰(Quế)는 고향을 의미한다. 그래서 송노꿰는 ‘그리운 고향 강’이다. 카르스트 지형의 가파른 절벽 파노라마와 산봉우리 어깨에 걸쳐진 역동적인 운해, 그리고 푸른 강물이 어우러진 이 구간은 하장 지역의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로 꼽힌다.
‘무한질주-MTB’ 총무를 맡고 있는 박정향(62)씨는 “국내에서 봐왔던 산이나 계곡과 느낌이 매우 다르다”면서 “자전거를 타고 왔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엄청난 풍경”이라고 했다. “같은 시간 동안 걸어서 보는 것을 ‘1’이라고 하면, 차로 보는 것은 ‘0.5’, 자전거로 보는 것은 ‘2’”라는 것이다.


북쪽에서 마피렝 협곡을 눈에 담으며 고개의 정상(약 1,500m 고도)에 세워진 “마피렝 전망대(기념비)”를 돌아 나왔다.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 이번에는 남쪽에서 마피렝 협곡을 감상하는 코스로 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가파르고 좁은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편하게 협곡의 경치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일반 MTB가 아니라 전기자전거여서 ‘파워 업(Power up)’을 하면 수월하게 고개를 오를 수 있다. 그렇게 드문드문 돌아본 마피렝 협곡은 북쪽에서 보는 것과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었다. 일행은 마피렝 협곡을 서남쪽, 북쪽, 남쪽 등 세 방향에서 각기 다른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대전에서 온 이순옥(60)씨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전기자전거 예찬론자가 됐다. 고개를 처박고 라이딩에만 집중해야 하는 부담은 줄고, 오히려 고개를 한껏 치켜들고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씨는 “(전기자전거는) 몸에서 받는 피로도가 훨씬 적으니까,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도 힘이 덜 들어서 저같이 이제 막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사람에게 너무 좋다. 문턱이 확 내려간 느낌”이라면서 “오늘도 울퉁불퉁한 길을 잘 갈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전기자전거를 타고서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실력도 더 향상된 것 같다.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빨래하던 몽족 여인이 건넨 옥수수 요리 ‘멘멘’
마피렝 협곡을 오르던 중 2~3살 아이를 데리고 집 앞에서 빨래하던 한 몽족 여인의 모습이 일행의 발길을 붙잡았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은 빨래를 발로 밟던 동작을 멈춘 채 동그랗게 솟아오른 배를 어루만지며 일행을 향해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뱃속 아이까지 자녀가 모두 3명이라고 했다. 여인의 허락을 얻어 집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은 벽돌집은 흙바닥이었고, 빛이 들치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나무를 때서 밥을 짓는 이유로 검은 검댕이 집안 전체를 덮고 있었다. 침실은 따로 차벽이 설치되지 않은 채 천으로만 살짝 가려져 있고, 나무침대 위에 깔린 담요와 벽에 걸린 옷가지들은 세탁한 지 오래되어 보였다. 전기가 들어오기는 하지만 전기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최대한 쓰지 않는다고 했다.


여인은 한쪽 팔로 아이를 안은 채 몽족이 즐겨 먹는 전통음식인 ‘멘멘'(Mèn mén, 옥수숫가루를 주재료로 한 찐 요리)을 권하며 일행을 환대했다. 자전거 헬멧을 쓰고 고글을 낀 일행이 신기하고 재밌었는지 연신 해맑게 웃어 보였다. 낯선 일행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흔쾌히 집 안을 내어주고, 떠나는 일행들을 향해 오랫동안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여인과 아이의 순박한 눈망울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전남 나주에서 온 전직 교사 백향하(61)씨는 “(여인과 아이를) 봤을 때 정말 가슴이 답답하면서 ‘아,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기를 보는 데 정말 마음이 아팠다”면서도 “우리 입장에서 보기에 안타까운 것이지,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고 있고, 우리와 똑같이 나름 그 안에서 기쁨과 행복과 슬픔과 고통을 다 느낄 것이다. 그들의 소중한 삶을 우리의 편견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백씨는 정년이 5년이나 남았지만, “자전거 타면서 여행하려고” 3년 전 명예퇴직을 했다고 한다. 백씨는 “이번에 정말 값진 경험을 했다. 소수민족 아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던 건 저에게 정말 좋은 기회였다”며 “오지마을이어서 중간에 먹거나 자거나 할 수 없으니 걸어 다니면서 경험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자전거가 아니면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했다.
출처: 오마이뉴스 – 최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