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있는 이과수 폭포 캐나다와 미국 사이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
잠비아와 잠바브웨 사이에 빅토리아 폭포 그리고 베트남과 중국 사이에는 반족 폭포
폭포를 바라보고 왼쪽은 베트남의, 오른쪽은 중국으로 강의 중간 즈음에 국경이 존재한다.
중국의 에서는 Duc Thien 덕티엔폭포라고 불리며 베트남에서는 Ban Gioc 반족폭포라는고 불리는 이중국적을 가진 폭포가 여기 있다.
베트남의 관광지로는 아직 낯설게 느껴지는 이 폭포는 중국의 내셔널 지오그라피 24년도 가장 아름다운 6개 폭포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까오방에 있는 반족폭포에 가기 위해 벼르고 벼렸다.
까오방은 Ban Gioc폭포와 , Nguom Ngao 동굴 같은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다.
산지가 90%가 넘어가는 도시로 아름답지만 하노이에서 약 6시간가량 (약 280 킬로미터 ) 버스를 타야 겨우 도착하는
장거리 여행이 되기 때문에 벼르기만 할 뿐 쉽게 여행을 가진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반족폭포는 까오방에서도 2시간가량 더 북쪽으로 가야 한다.
먼저 반족폭포로 가기 위해 여행사와 버스표를 알아봤다. 미리 예약해 여행사의 버스도 이용할 수 있지만
로컬 버스 정류장에는 매시간 예약 없이 버스를 탈 수 있어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스케줄은 낮부터 계속 있었지만 총 8시간이란 긴 시간을 버스 타야 하는 만큼 밤 시간의 슬리핑 버스를 이용했다.
4:30분 경이되자 버스는 어둡지만 분주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이 새벽시간 인구가 800,000 명도 안된다는 이 도시에 누가 이리 오는지 버스가 계속해 들어오고
정류장 앞 노상 쌀국수들은 다들 불이 켜져 있고 손님을 받으려 손짓해 댄다
그때 베트남 아저씨가 알지 못하는 베트남어로 말을 걸어오고 이해하지 못하는
그 말에 나는 이해한 듯 반족이란은 단어를 내뱉고 아저씨는 또 이해한 듯 반족 버스 버스를 가리킨다.
그렇게 새벽 5시 닭과 짐과 베트남 사람들과 어색하게 섞여 앉았다.
살짝 눈이 감 길듯 말 듯 출발을 기다리다 보니 오래된 트럭의 시동소리와 베트남 가요가 출발을 알렸다.
카오방의 날씨는 전체적으로 온화 하지만 겨울철 12월~ 2월은 한국의 초겨울과 같이 쌀쌀하고 고도가
높은 곳은 눈이 올 수도 있으니 따뜻하게 입고 가는 게 좋다.
슬리핑 버스를 탈 때도 마찬가지이다. 20도가 넘어가는 호찌민에서 슬리핑 버스를 타도 추위를 느끼게 되니
베트남 북부 겨울의 날씨에서 오랜 시간 히터 없이 타고 가다 보니 추위를 견디기가 여간 힘들다.
담요를 주지만 이상하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니 항상 따뜻하게 후드티와 긴바지 그리고 겉옷을 준비해 간다.
하지만 난 그것보다 더 따뜻하게 입었어야 했다. 잠결의 새벽바람은 못 이기게 추웠다.
두 시간이 조금 넘어 운전기사가 나를 가리키며 내리라고 소리를 질러줌에 춥지만 밖보다
따뜻한 버스에서 내려 도착하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신없이 짐을 챙겨 버스를 내렸다.
리조트 하나가 보이며 물소리로 반지옥 폭포에 도착했다며 웰컴이라 외치고 있었다.
반족폭포는 사실 한국에서 검색을 할 때는 반지옥폭포라고 써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베트남인들이 발음은 반지 옥보다는 반족이라는 발음에 더 가깝다.
입장료 4만 동을 주고 입구를 지나쳐 반지 옥 앞에 섰다.
중국인지 베트남인지 헷갈리는 곳이다. 핸드폰의 시그널도 중국으로 바뀌어 버린다.
건너편에 중국 관광객들이 건기에는 폭포 앞까지 돌아볼 수 있도록 운항하는 뗏목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어가 써져있는 뗏목들이 지나다닌다. 그에 비해 한적한 베트남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베트남의 대부분의 폭포가 건기와 우기에 따라 양과 색이 달라 마치 다른 모습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날씨와 취향을 고려해 여행의 시기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 이 자유인은 여름에 와서 여기서 수영을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역시 이렇게 뗏목이 다니고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인 이곳에서 수영은 힘들겠지라며 살짝 접어둔다.
폭포는 생각한 것보다 크게 보이지 않았다. 위쪽으로 계속해 폭포가 있다고 하지만 아래쪽에서 보는
폭포의 모습은 규모가 조금 더 작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쉽지 않았다.
돌아가는 버스도 20분 간격으로 계속 멈춰 선다. 4시 40분이 까오방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시간이란 것만 확인을 하고
정류장에서 마냥 기다리니 버스가 탈탈 거리며 들어왔다. 그 버스에 몸을 맡기고 반족과 인사했다.
시골 마을에 누가 이리 많이 탈까란 생각도 잠시 매 버스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어느 정류장에서는 잠시 멈춰 물건을 사 오는 여학생을 잠시 기다려 주기도 하고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도
손을 흔드는 사람을 태우기도 한다. 그러다 다급한 버스기사의 소리와 함께 함께 탄 안내양은 재빠르게
흰 봉지 하나를 기사 옆자리의 여자에게 건네고 토를 하는 모습까지 티브이 속에서 보던 옛 우리 시골의 모습만 같다.
사실 기다렸던 반족 폭포만큼이나 내 마음에 와 닿은 건 이 버스 안에서의 두 시간이었다.
베트남 산골 마을들을 하나하나 지나가며, 그 사람들의 생활과 , 버스 안의 분주함 그리고 함께하는 산 봉우리들이 너무나 멋졌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까오방은 베트남의 북부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90%가 산지인 도시이다.
동쪽은 바위 산들이 남서쪽은 숲이 있는 산들 서쪽의 산들산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카오방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버스길이었다. 까오방은 산이 울창해 프랑스 식민지 시절은 독립운동가들이,
베트남 전쟁 시는 공산당이 이곳을 중심으로 기지를 세우고 은둔하며 머물기 할 정도로 산이 험하기도 울창하기도 하다.
설렘과 두려움과 함께 멀리 까오방으로 여행을 왔다.
그리고 두려움은 잊었고 설렘은 추억으로 바뀌어 남았다.
사실 여행만이 아니라 여행 같은 일상이 길어지며 불안감도 더 커져왔다.
하지만 또 매 순간 이겨낸다. 잘하고 있고 두려움을 밝고 앞으로 조금씩 더 걸어나가면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조금 더 두려움에 자유로워지고 싶은 요즘이다.